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스티브 가비 (문단 편집) == 이모저모 == || [[파일:external/shlabotnikreport.files.wordpress.com/1979-hostess-steve-garvey.jpg]] || [[파일:external/www.tradingcarddb.com/72299-3Fr.jpg]] || 사진에서 볼 수 있듯 선수 시절 상당한 미남이었다. 이는 가비가 선수 시절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. 노인이 된 지금도 [[아놀드 슈워제네거]] 느낌이 나는 [[미노년]] 축에 속한다. [[아일랜드계 미국인]]인지라, 아일랜드계 미국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어 있기도 하다. 함께 헌액되어 있는 멤버로는 다저스의 옛 구단주였던 [[피터 오말리]], '다저스의 목소리' [[빈 스컬리]], '전사' [[폴 오닐]]과 퍼펙트 게임을 날려먹은 희대의 오심으로 유명한 [[짐 조이스]] 심판 등이 있다. 상술했듯 팬들에게는 살갑게 대했던 덕에 이미지가 굉장히 좋았지만, 일부 동료 선수들 사이에서는 이러한 가비의 행동이 구단 수뇌부의 총애를 얻기 위해 본심을 숨기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감을 사기도 했다.[* 은퇴 후 정계로 진출하려고 했던 것과, 향후 밝혀진 가비의 막장 행보를 보면 어느 정도 들어맞는 듯 하기도 하다.] 이것 때문에 2차례나 팀원들과 갈등을 빚었던 적이 있었다. * 다저스 시절인 1976년 동료 선수였던 론 세이와 데이비 롭스[* 이 둘은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다저스에서 호흡을 맞췄던 내야진의 일원이다. 이후 흩어져 1987년을 끝으로 셋 다 동시에 은퇴했다. 공교롭게도 이 둘의 클래식 스탯은 가비보다 뒤쳐졌지만, 이후 개발된 [[WAR]]에 따르면 [[거품#s-5|가비보다 뛰어난 선수들이었다.]]]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이 지역 언론사에 가비를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인터뷰를 했다. 이 문제로 [[월터 앨스턴]] 감독이 긴급 팀 미팅을 소집하자 가비가 "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나한테 직접 하라"고 일갈하며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했다. 당시 다저스 팀 동료였던 [[토미 존]][* [[토미 존 수술]]의 그 토미 존이 맞다.]은 훗날 "그 시점부터 앨스턴 감독이 선수단 장악력을 잃기 시작했던 것 같다"고 회상했으며 실제로 앨스턴은 1976년 시즌 종료 후 감독직에서 사임한다. * 역시 다저스 시절인 1978년, 팀의 에이스 [[돈 서튼]]이 "가비보다는 [[레지 스미스]]가 더 나은 선수다", "(아부를 한) 가비만이 다저스에서 유일하게 유명해질 수 있었다"라며 비판하는 발언을 한 것이 기사로 실렸다.[* 스미스는 당시 팀의 주전 우익수로서, 그 역시 가비 못지 않은 강타자였다. 이전에는 [[보스턴 레드삭스]] - [[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]]에서 뛰다가 1976년 시즌 중 다저스로 이적했다. 참고로 스미스의 WAR은 60 중반, 가비는 30대 후반이기 때문에 현대야구에서는 위 둘은 비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.] 이후 이 기사를 본 가비가 라커룸에 인쇄된 기사를 들고 와서는 서튼에게 "정말로 네가 이런 말을 했냐"며 따졌고, 서튼이 그렇다고 응수하자 이내 둘은 [[현피|레디 파이트]].[* 들리는 이야기로는 가비가 서튼을 [[토미 존]]의 라커에 '''냅다 집어던져버렸다(!!)'''고 한다. ~~토미 존은 무슨 죄~~] 그나마 서로 다치진 않았고 이후 어찌어찌 서로 잘 해결한 듯 하다. --위의 일화들에서 언급된, 토미 존을 비롯한 '''모든 선수들'''의 WAR은 가비보다 높다-- 앞서 서술한 사생활 논란이나 팀메이트와의 불화 등 여러 트러블이 있긴 했지만 워낙 팬들 사이에서 이미지가 좋기도 하고 다저스 구단 측에서도 그의 공로를 잊지는 않고 있어서, 다저스에서 레전드 초청 이벤트를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그의 이름이 들어가 있다. 또 그 이벤트들에서 현역 시절 갈등을 빚었던 동료들과도 잘 지내고, 가비가 다른 단체에서 활동할 때 다저스 시절 동료들이 축전을 보내는 모습 등을 보면 나름대로 화해를 한 듯 하다. 드래프트 1라운더이자 대도시 인기 구단의 [[클린업 트리오#s-2.2|4번 타자]], 팬서비스는 좋았지만 사생활은 막장이었다는 점 등에서 [[KBO 리그]] [[두산 베어스]]의 前 내야수 [[김동주(타자)|김동주]]와도 겹치는 부분이 많다. 우연찮게 우승 횟수와 준우승 횟수마저 같다![* 가비는 1981년 우승+1974, 1977, 1978, 1984년 준우승. 김동주는 2001년 우승+2000, 2005, 2007, 2008년 준우승.] 그러나 차이점도 많이 있다. 가비는 세이버메트릭스가 등장하면서 평가가 떨어진 축에 속하지만 김동주는 오히려 세이버메트릭스 덕에 평가가 더욱 올라갔다.[* 누적스탯 기준으로도 가비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들과 비교해도 별볼일 없는 선수가 맞다. 반면 김동주는 아직도 팀 기록이나 리그 기록 곳곳에서 이름을 올려놓고 있으며, 경기수가 늘어나 스탯 누적이 유리해진 현재의 KBO 타자들과 비교해도 커리어가 뒤쳐지지 않는다.], 가비는 리그를 대표하는 철강왕이었지만 김동주는 잔부상의 대명사였다는 점도 다르다. 또 구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행사에 자주 얼굴을 비추는 가비와 달리 김동주는 선수 시절부터 연봉 및 FA 계약 문제 등으로 구단과 항상 마찰을 빚어와 은퇴 후로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